제 기억으로는 삼일교회가 되게 작은 소규모의 단층짜리 교회였던걸로 기억하고, 그 앞이 저희의 놀이터였죠.

장진숙 님

인터뷰 개요
면담자 강혜영
면담대상 장진숙
대상약력 신월3동 40년 거주민
기관위치 남부순환로36길 9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신월3동에서 85년부터 살고있는 장진숙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되나요…? 5살 때부터 살았고, 신월동 교회 바로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지금 주민센터가 있는걸로 알고있는데, 주민센터가 없을 때부터 사신건가요?
네 지금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신월동 교회밖에 없고요, 신월동 교회도 제가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그때 다 안 지어진 상태였던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리고 동사무소랑 양서중학교 이런 자리는 다 공터였어서 거기에서도 많이 놀았고, 주민센터는 판자촌이라고 해야되나? 그런 식으로 다 되어 있었죠.

장진숙님 사진
장진숙님 사진
장진숙님 께서 운영하시는 미용실
장진숙님 께서 운영하시는 미용실

현재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어머니 아버지가 바로 옆에 사시고, 남편이랑 아들 둘이 있습니다.

이 골목으로 이사온지는 얼마나 되신건가요?
성인이 돼서 신원중학교 앞으로 이사를 온 거고요. 그 전에는 계속 시장안에 살았죠. 시장 안쪽에서만 계속 이사를 다녔고, 회관앞에서도 살았고, 지금 현재도 남아있는 금성약국 그 뒤에도 살았었고요.

그 당시. 그 때 우리동네의 풍경과 분위기는 어땠었나요?
시장이 죽어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 장사하시는 할머니들이 다 30~40대 였을 테니까… 그때 제가 기억하는 시장은 되게 활기가 있었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골같은 그런 느낌이 있으니까 누가 옆에 사는지도 다 알고 지냈죠.

과거 삼일교회 사진
과거 삼일교회 사진

예전에 듣기로는 삼일교회 규모가 커진거라고 하던데 원래 어떤 모습이었나요?
제 기억으로는 삼일교회가 되게 작은, 소규모의 단층짜리 교회였던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그 앞이 저희의 놀이터였죠. 지금 삼일교회는 청년들이 활동하는 그런 공간도 따로 생기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 곳이 저희 어릴때는 슈퍼였거든요. 그 앞에서 옛날에는 보글보글 오락하고, 불량식품 연탄불에 구워먹고 했던 슈퍼였고, 지금은 경인 놀이터라고 이름이 있는 거기서 엄청 많이 놀았죠. 결혼 전에도 거기는 놀이터였어요. 모래 놀이터였고, 그 앞에 코아루 아파트 있던 자리에 운전면허 학원도 있었고, 양서중학교 자리가 평지랑 밑에 공터처럼 된 공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서커스가 와서 구경했던 기억도 있고요.

현재 삼일교회 사진
현재 삼일교회 사진
현재 삼일교회 주변 골목 전경
현재 삼일교회 주변 골목 전경

신삼마을에 서커스가 들어온 적이 있나요?
어릴때는 들어왔던 것 같아요. 80년대 후반이니까. 다같이 구경하러 가고 이랬던 기억이 있거든요.

코아루 아파트 자리가 운전면허 시험장이었다는 것도 놀랍네요!
그때는 이제 뭐하는 곳인지 정확하게는 모르니까, 노란 차들이 장난감 트랙같은 걸 도니까 자주 구경했었죠. 담장이 되게 낮았거든요. 그리고 양 옆으로 다닐 수 있는 샛길 같은게 있어서 항상 그쪽을 통해서 많이 걸어 다녔어요.

학교는 어디를 나오셨나요?
신원초등학교 10회 졸업생이구요, 신원중학교 8회졸업생이에요. 신원초등학교도 우리 어릴때는 1, 2학년은 오전, 오후만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호수공원 있던 자리에 수원지가 있었거든요. 그쪽이나 학교 뒷산으로 소풍을 가고 그랬던 기억도 있네요.

신삼마을 골목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기억이나 경험, 사건들이 있으신가요?
다들 비행기 소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데, 저는 5살 때부터 듣고 자라서 그런지 시끄럽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았던 것 같고, 지금 우리은행이 2층으로 올라갔지만, 저희 엄마는 지금도 거기를 상업은행이라고 생각을 하세요. 한빛은행 이런걸로 바뀌는 과정들을 다 봤으니까요. 그 건물들은 저 어릴때 있던 건물 그대로고, 신현수 의원도 예전에는 건물 하나가 다 병원이었어요. 지금 메디힐 병원이 되기 전에, 서안보건병원일 때 같을 정도로 되게 큰 병원 이었어요. 신현수 의원은 나름 저도 어릴 때 가서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골목에 차가 많아졌지만 그거 말고는 특별히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것 같아요.

신삼마을에 가장 필요한게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저도 그쪽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한 대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것까지는 솔직히 모르겠고… .그냥 사람들이 살기 되게 좋은 동네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 시골같은 그런 느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동네니까요.

장진숙님의 추억이 담긴 사진
장진숙님의 추억이 담긴 사진
장진숙님의 추억이 담긴 사진
장진숙님의 추억이 담긴 사진

미용실은 운영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로 24년째에요. 학교다닐 때부터 했거든요.

제일 기억에 남는 손님이라던가 힘들었던 손님이 계셨었나요?
소위 말하는 진상손님이 저는 별로 없었어요. 다 아시는 분들이 오시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 오셔도 저는 손님이 어디를 가든 돈을 내면, 그 만큼의 가치를 받고 싶어하는게 모든 손님의 심리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원하는거를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은 들어주는게 맞다고 생각을 해서, 그냥 제가 해드릴 수 있는 한은 들어 드리려고 하는 편이에요. 대신에 안되는 거는 정확하게 얘기해드리는 편이긴 해서 그런지, 제가 너무 성격이 쌔서 그런지 저한테 진상으로 오시는 분들은 없는 것 같아요.

장진숙 선생님께서 40년 전 거주하시던 곳 사진
장진숙 선생님께서 40년 전 거주하시던 곳 사진

신삼마을에서 오래 거주하고 계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 저는 맞벌이다 보니까, 제일 큰 이유는 육아를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부모님과 가까이 살야되는것도 있고요. 어쨋든 서울 안이지만 가격이 착한 동네이니까요. 지하철을 타려면 버스를 타고 한번 나가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집앞에 바로 은행도 있고… 이런 동네가 많지 않죠, 병원도 큰 병원이 바로 앞에 있고요. 살기에는 되게 좋은 동네인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다른곳에 가서 살고싶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별로 없네요.

예전 육교가 있던 시절에 기억나시는게 있나요?
제가 육교 덕분에 계단 달리기를 굉장히 잘합니다. 그때는 제가 출근을 이대쪽으로 했었어요. 이대까지 한번에 가는, 정확히는 광화문까지 가는 61-1 버스가 있었는데, 그게 이제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출근시간에 그거 한 대를 놓치면 지각이었거든요. 집에서부터 정말 미친듯이 뛰었죠. 신호에 버스가 걸려있으면 육교에서부터 날아갔어요. 계단을 3개씩 뛰어내려가서… 그때는 20대 초반이었으니까 그런 신호 타이밍에 맞춰서 뛰어갈 수 있었거든요. 육교도 나쁘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육교에서 장사하시는 분도 있었고. 동네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좌석버스가 없어진게 너무 아쉽거든요. 그때 당시에, 스텝으로 일할 때 버스기사님이 제가 자고 있으면 깨워주셨어요. 제가 어디서 내리는 줄 아시니까요. 지금 횟집 앞에 할리스커피 있던 자리가 내리는 곳이었거든요. 지금은 버스 노선이 많이 바뀌었죠.

아까 초등학교 이야기를 했었는데 장진숙님이 초등학교를 다니실 때는 마을에 사람이 많았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왜냐면 1,2학년 때는 오전, 오후반 했던 기억이 나고요. 제가 4학년 때 양원초등학교가 생겼어요. 양원초가 생기면서 당시에 강제 전학을 시켰어요. 저는 다행히 시장 안쪽에 살고 있어서 신원초를 무사히 졸업을 했지만, 그때 우리학교에서 1천명을 양원초로 보내고, 월정초에서 600명인가를 우리학교로 보내고 그런식으로 강제 전학을 시켜서 학교가 생겼던걸로 기억해요.

인터뷰 후 기념품 전달 장면
인터뷰 후 기념품 전달 장면

자녀를 키우시는데 있어서 신삼마을은 어떤 것 같으신가요?
일단은 제가 기억하는 이 동네는 40년 가까이 살면서 큰 학생 범죄나 이런 것들도 없었고, 미용실을 하면서 초등학생 때 처음 봤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서도 계속 오는 손님들도 있거든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이쪽 동네 애들이 되게 순수하고 착해요. 시골 같아서 약간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미성년자일때는 어쨌든 제어가 어느정도 필요할 때잖아요. 그런데 예를들어 양원초 출신들을 중학교 가도 담배피는 애들이 없다 이런 소문이 돌 정도로 애들이 순수하고 그런게 있죠.

교육을 위해 마을을 떠나시는 분들도 많던데, 그런 생각을 해보신적 있으신가요?
교육은 물론 환경이 중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아들의 교육을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고, 신경을 쓰는 편이긴 한데 그거는 부모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서 아이가 달라지는거라는 생각이 저는 있거든요. 물론 아이가 얼만큼 따라주고 안따라줄지는 이제 아이의 몫이겠지만… 그래서 동네에서 보면 수준 낮다는 우리학교에서 국제중학교 간 친구들도 있고 한걸 보면 본인이 노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같은 경우도 저 개인적으로는 나름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까 그런거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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