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저희는 장화를 신고 돌아다녔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집마다 5만 5천원씩 돈을 걷었어요. 그 돈을 가지고 도로 포장 공사를 했죠.

양달순 님

인터뷰 개요
면담자 변혜정
면담대상 양달순 님
대상약력 신월3동 46년 거주민
기관위치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77년도에 진해에서 올라온 양달순 이라고 합니다. 통합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신삼마을에서 40년 정도를 살았어요. 애들은 다 외국에 나가있고 아들 하나는 마곡동에 살아서 지금은 혼자 살고 있고요. 이 동네에서 농사 짓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어요.

신삼마을에 들어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진해에서 여기 통합병원으로 근무 발령이 났어요. 진해에서만 살다 보니 서울 지리 같은 걸 잘 몰랐는데 같이 근무하시는 분이 신월동이 집값이 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거죠.

농사 지은 것들을 파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했으니 15년 정도 됐을 거에요.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긴 하지만 부업으로 하고 있죠. 고강동에서 직접 농사를 짓거든요. 새벽에 가서 농사 짓고, 거름도 뿌리고 다 크면 뽑아서 파는 거죠.

신삼마을에 처음 오셨을 때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그렇게 좋은 동네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도로변이 포장이 안 되어 있었고, 하수도 물도 길거리에 돌아다녔거든요. 오죽하면 저희는 장화를 신고 돌아다녔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집마다 5만 5천원씩 돈을 걷었어요. 그 돈을 가지고 도로 포장 공사를 했죠.

골목에 관련된 기억나는 경험이나 사건 같은 게 있으신가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사니까 좋은 것 같아요. 이 사람 저 사람 보고 사니까 친근하기도 하고 인심도 좋죠. 단골손님도 많이 계시거든요.

장사하시면서 사귀신 이웃 분들이 계신가요?
이 동네에는 많이 있죠. 장사하러 나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고 그래요. 밥도 나눠 먹는데, 오늘도 뒷집에서 국수를 같이 먹었어요. 이렇게 얻어 먹으면 나중에 과일이나 빵 같은 걸 사서 나누기도 하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요.

마을의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의 마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은 살기 좋죠. 비행기 지나가는 거 외에는 살기 좋은 동네가 신월3동이에요. 옛날에는 1분에 한번씩 비행기가 다녔으니까요.

장사를 하고 계시는 양달순 선생님
장사를 하고 계시는 양달순 선생님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해주고 계시는 양달순 선생님(우측)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해주고 계시는 양달순 선생님(우측)

마지막으로 골목에 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신삼마을은 사람들이 다 좋아요. 그런데 장사가 안돼서 조금 힘드네요, 상권만 다시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인심 좋은 신삼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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