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소중한 추억? 이거는 뭘 줘도 못바꾸는 추억이죠. 다시 그때로 가고싶다, 진짜 타임머신이 생기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죠.

최영주 선생님

인터뷰 개요
면담자 변혜정
면담대상 최영주
대상약력 신월3동 40년 거주민
기관위치 남부순환로54길 51-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영주 이고 이제 만 40세가 됐고요. 주거 형태는 빌라라고 그래야 하나? 다가구 주택에서 지금 한 5가구정도가 같이 살고 있어요. 위아래층으로 각자 다른 집이고 그 다음에 저희는 5명, 아이셋에 저랑 신랑까지 5명이 살고 있어요.

신삼마을에는 언제부터 거주하신건가요?
지금 그쪽 골목에서는 11년 정도 됐어요. 그전에는 고강동에서 잠깐 살다가 그전에 신월 청소년 센터 농구장이 있던 자리가 예전 집이 있던 곳이에요.

옛날 신삼마을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완전히 시골이요. 그 앞에 도로들이 거의 공사 중 이었어요. 다 저런 차도가 아니라, 막 흙이 있고 이래가지고. 예전에 비포장도로였고 개천이였다고 그러던데 물이 흘렀다고 얘기는 들었거든요. 그건 어릴 때 기억은 없는데..제가 기억하는 건 다 공사하고 있었던 기억이에요.

상가같은 것들도 없었나요?
완전 애기때는 기억이 안나고 초등학교 때는 상가들이 많았어요. 신발가게, 가방가게, 음반파는 가게..그때는 활성화가 엄청 잘 됐었어요. 저 어릴 때 공사가 싹 끝나서 가로공원이 조성이 된거에요.

질문에 답변을 하고 계시는 최영주 선생님
질문에 답변을 하고 계시는 최영주 선생님

골목에 관한 기억나 사건 추억같은게 있으신가요?
저희때는 골목이 다 놀이터였어요. 어디를 가도 다 즐거웠고, 지금은 차가 많고 오토바이가 많아서 애들을 앞에 내놓기도 힘들지만 그때는 어디를 가도 위험한 게 없어서 놀이터에서만 놀아도 즐거웠어요.

그때도 놀이터가 있었나요?
음 나무놀이터(현 경인놀이터), 그러니까 양서중학교에서 올라오는 그 놀이터가 예전에는 흙 놀이터였어요. 그리고 뱅글뱅글 도는 놀이기구도 있어서 손 놓고 타면서 놀기도 하고 동전도 줍고 그랬죠. 애들이랑 군것질도 해 먹고, 애들이랑 술래잡기 얼음땡 이런것도 많이 했고. 놀이터에서 고무줄도 많이 했네요. 진짜 검정고무신 만화처럼 고무줄 하면 남자애들이 와서 끊어 먹고 이런거 진짜 저희도 했고, 골목에서 콘티찐빵?이라고 그래야 하나 그런것도 많이 했어요?

콘티찐빵은 어떤 놀이인가요?
콘티찐빵 선을 그려서 땅을 넘어가고 하는 놀이에요.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름이 바뀌었을 거에요. 그거 말고 개뼈다귀도 있었는데..이건 뼈다귀만 그려서 술래가 밖에서 지나가는 애들을 잡는거에요. 그리고 낙서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벽에다 그림 그려도 주민들이 뭐라고 안했는데 지금은 되게 혼내고 그러죠. 그런거 말고는 벨누르고 도만가는 것도 많이 해봤죠.

옛날에도 벨이 있었나요?
네 좋은집은 벨이 있었어요. 안되는 집도 있었지만 좋은 집은 삐 소리가 나는 것도 있었어요. 그 다음에 옛날에 살 때는 앞집, 옆집, 뒷집 다 아는 사람들이라 음식을 새로 하면은 서로 나누어 먹고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없어요.

시골하고 똑같았네요.
그냥 문을 열어놓고 살았거든요. 금산연립 살 때도 그냥 문을 열어놓고 살았어요. 다 가정사도 알고 누가 싸우면 가서 말려주고 이러기도 했는데…지금은 다들 문을 닫고 살고 누가 위, 아래 사는지 모르니까 그런건 조금 옛날이 그리워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어릴때는 왜 저렇게 문을 열어놓고 사나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다들 좋으신 분들을 만났었고, 김치를 하나해도 한쪽씩 다 나눠주시고 그러면 저희도 받았으니까 어머니가 부침개를 해서 넘겨주시던지 했었죠. 그때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층간소음 이런것도 모르고 살았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만 뛰어도 달려오니까요.

옛날이랑 차이가 많이 나네요.
응 조금 그래요. 아무리 밑에는 애를 다 키웠다지만 우리는 애들이 있어서 조금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한번은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딸이 책을 하나 떨어뜨렸나 봐요. 그런데 바로 밑에서 막 쿵쿵 치더라고요. 나중에는 집으로 찾아 올라왔고요. 근데 그때가 8시였는데 꼭두새벽부터 뭐하냐고..저는 그게 더 이해가 안되는 거에요. 그 시간까지 자고있는 아들도 문제지만 이게 어떻게 꼭두새벽이지? 이런 생각도 들고..우리는 애를 키우니까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계속 티격태격 하니까 옛날이 그립다 이런생각이 조금 많이 들어요.

청소년 센터 쪽에 사실때는 어떠셨나요?
지금은 골목에 애들이 없는데 그때는 지나가기만 하면 다 친구들이었어요. 그래서 혼자 나와도 학교 가는데 심심한 게 없었죠. 그때는 삐삐나 이런게 있던것도 아닌데 나오면 다 만났어요. 꽤 먼 거리지만 다들 그 시장근처에 사니까..지금 체리이야기, 그러니까 청소년 센터에서 내려와서 토마토분식(현 체리이야기)지나서 동사무소 언덕으로 올라가거든요, 큰 길로 안가고. 큰 길은 차가 다니니까 애들이 없었고, 그쪽으로 가서 놀이터쪽으로 가면은 친구들을 다 만났어요. 어쩔 때는 학교가야 하는데 놀이터에서 놀다가 지각하는 경우도 있었죠.그 다음에 학교 앞에 불량식품 파는 것들 뽑기 같은 것들도 해먹고, 종이뽑기 해서 꽝이 나오면 아줌마가 땅콩캬라멜 한 세 개 씩 주고 그런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학교 앞에 문방구도 사라졌구요.

지금이랑 비교가 많이 되는것 같아요.
네 확되는것 같아요. 그러니까 재미있었던 추억이 없어요. 우리는 학교 준비물을 다 우리가 준비해야 됐었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다 해주더라구요. 세상이 좋아졌다라고 느끼긴 하지만 그런 추억들이 없어요. 문방구도 뭘 파는 것 없이 불량식품만 팔더라구요 이제는. 지금 여기 신원 초등학교 앞에 보면 원래 문방구가 2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둘 다 사라졌어. 그니까 애들한테 이제 문방구가 필요가 없어진거죠.
그때 우리는 되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지금 운동회는 학년을 나눠서 해요. 홀수학년 짝수학년 이렇게 따로 따로 하는데, 우리때는 대 운동장 이잖아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가지고 돗자리 깔고 음식 다 해오고, 진짜 잘 살던 집이 치킨도 튀겨야하고, 어쩔 때는 짜장면도 배달해 오고 제일 좋았던게 가족들이 다 모이니까 그런게 좋았죠. 그 다음엔 엄마들도 운동회 한다고..그때는 상품도 줬어요. 운동회를 하면 지금도 주긴 하는데 그때는 할머니들도 뛰쳐나오시고 그랬으니까..왜 예전처럼 못하지 이런 생각도 들죠. 일단은 애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그때는 한반에 60명이 넘었었는데 지금은 30명이 안돼요. 한 열 몇반씩 있었던걸로 기억나는데 지금은 세 반, 네 반 정도로 애들도 많이 줄었어요.

그러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어떤걸 하면서 노셨었나요?
경인놀이터 가서 그네타고, 뺑뺑이도 돌리고, 미끄럼도 타고, 그때는 놀이터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네가 쇳덩이리 같은 그네였는데 그거 때문에 많이 다치기도 했었죠. 설치도 낮게 되어있고, 그때는 서서 타고, 누워서 타고 그러다가 머리 쿵 박고 떨어지면 다치고..친구들 중에는 몇바늘 꼬맨 애도 있고요. 거기가 분명히 흙인데 돌이 있어요. 뭐 그래도 좋다고 놀았으니까..집에가서 혼나는거죠. 피가나면 빨리 집에 와야지 왜 빨리 와야지 안오냐고.
지금이야 애들 tv프로그램이 종류가 많은데 우리때 주말에는 아침에만 잠깐만 했으니까요. 만화 한시간 정도가 끝나면 밥 먹고 나가서 저녁먹을때 쯤 집에 오곤 했죠.

너무 늦게 와서 어머니께서 찾으러 오시진 않으셨나요?
처음엔 찾으러 다니시다가 이제 포기하시거든요. 그리고 배고프면 다 알아서 집으로 들어갔어요. 아침먹고 나갔다가 점심도 안먹고 놀고, 들어가서 저녁 먹고, 자고 그랬죠. 그리고 소독차가 연기를 하얗게 뿌리는데, 지금은 되게 약하게 나와서 재미가 없잖아요. 그때는 그거를 앞이 안보일정로 뿌려서 친구들끼리 그거 쫓아다니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잊어버리기도 했어요. 근데 어차피 이 동네니까 가다 보면 탐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해서 재미있었죠. 가다가 친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어느 순간 안 보이면 집에 갔나 하고 생각했죠. 그때 당시에는 전화기가 없었으니까 연락도 못했잖아요? 대신에 엄마가 친구들 전화번호를 다 알고 계셔서 집에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엄마들끼리 확인도 하고 그랬던것 같아요. 결혼전에 아가씨 집에서 예전 전화번호를 봤어요. 제가 아가씨랑도 친구였더라구요. 근데 언제 놀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양원으로 옮길 때 아가씨는 신원을 계속 다녔으니까 그때 헤어졌나? 전혀 기억이 없는데 제가 가서 놀았었나봐요.

최영주 선생님(좌측) 인터뷰 장면
최영주 선생님(좌측) 인터뷰 장면

그런 기억과 추억이 지금 어떤 의미가 있으신가요?
어릴때 소중한 추억? 이거는 뭘 줘도 못바꾸는 추억이죠. 다시 그때로 가고싶다, 진짜 타임머신이 생기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죠.

현재 신삼마을 골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은 사람이 없어요. 학교 안 가는 날이면 애들 목소리로 시끌벅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예 골목에 사람을 못봐요… 코로나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고요. 시장도 많이 죽었어요, 그때는 바글바글 했거든요~ 우리 때는 가방을 사도 동네에서 살 수 있었고, 신발을 사도 동네에서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요. 신발가게도 없고, 가방가게도 없고 많이 사라졌어요. 이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많이 되는것 같아요. 살려보려고 노력하시는데 조금은 힘들지 않을까 이런생각? 뭐 하나가 들어와도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문 닫고 가게가 나가고 이러니까…

신삼마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주차문제요. 여기는 주차가 너무 안돼요. 주차장이 생겨도 골목이 좁아서 자리가 없으니까요.

앞으로 신삼마을 골목이 어떻게 변하면 좋으시겠어요?
예전처럼 활발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기는 사람 얼굴을 못 보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서로 못 믿으니까…다른 곳에서 온 사람도 많아지고, 잘못 쳐다보면 칼부림 날까봐 무섭고요. 그런게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조금 걱정되는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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