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끝내고 이제 현관을 나가는 손님들이 “아~ 시원하다”, “아~ 개운하다” 하면서 나갈 때가 참 기분이 좋아요.
청수탕 부부 인터뷰
면담자 | 김희정, 윤주능, 정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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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대상 | 임윤성(1954년생) |
대상약력 | 청수탕 주인 |
기관위치 | 신월동 161-9(남부순환로42길 17) |
청수탕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편하신 대로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청수탕은… 준공한 날짜가 1984년 10월달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2021년이니까 햇수로 37년이 된 건물이죠. 오로지 그냥 목욕탕으로만 운영됐던 건물입니다.
자금의 문제나 IMF로 인해 경제적인 타격은 없으셨나요?
운영하는 데는 그렇게 어려움 없었어요. 주민들이 많이 이용을 해주시고 또 주변에 목욕탕이 없기 때문에 운영하는데 큰 애로사항을 못 느꼈습니다. 큰 돈 벌려고 들어온 건 아니고 사실은 당시 재개발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들어왔었습니다.
23년 동안 운영하시는 동안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 텐데, 기억나는 그런 일들이 있으실까요?
목욕을 끝나고 이제 현관을 나가는 손님들이 ‘아~ 시원하다’, ‘아~ 개운하다’ 하면서 나갈 때가 참 기분이 좋아요. 그 기분은 겪어보지 못하면 못 느껴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못 느껴보는 그런 뭐랄까 보람이랄까. 나도 덩달아 시원하고 기분 좋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 자리 카운터를 지킨다는 게 어찌 보면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이거는 건물 자체가 목욕탕 건물이기 때문에 목욕탕 말고는 다른 가게를 하는 것이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명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다시 짓고 다시 하기에는 시장성이 너무 없어요. 마침 시에서 주민들 위한 시설을 쓴다고 하길래 두말하지 않고 미련 없이 정리를 했습니다. 또 대형목욕탕이 생겨나면서 동네에서 쓰는 이런 목욕탕들에 대한 퀄리티가 너무 낮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목욕탕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가 지금 넘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자제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들 하나 있고 장가가고, 또 손녀딸이 하나 있는데 지금 또 뱃속에 또 손주놈 하나가 크고 있습니다. 3월달이면 나옵니다. 허허허.
자제분은 이 청수탕과 어떤 기억이 있으실까요?
그렇죠. 아들이 여기에 중학교 때 왔으니까 여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까지, 아 대학은 다른 데서 기숙사에서 다니고.
아드님은 매각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얘기하시나요?
아들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매여있는 부모가 불쌍하죠, 사실은. 좀 쉬실 때도 됐고… 아들은 파는 거에 대해 아쉬워하는 건 없습니다.
주변 24시간 찜질방도 생기고 했다고 하셨는데. 청수탕에 그래도 계속 오시는 주민들이 있나요?
그럼요, 그분들한테 고맙죠. 여기가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거기 때문에 말하자면은 거의 가족들이죠. 손님들끼리는 전부 언니 동생하고 그런 식으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이들 이용을 하죠.
카운터에서 하는 그거 이외에도 주차 관련해서도 굉장히 많이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주차 때문에… 자금 이 앞으로도 차들이 다니는 길인데요. 앞에 대문도 막아 놓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목욕탕 앞에 개인 주차장이 있지만 그거를 못 씁니다. 거기를 쓰려면 몇 대의 차가 희생을 해야 합니다.
청수탕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23년 운영하시면서 가장 큰 위기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지금이 가장 힘든 거 같습니다… IMF도 잘 넘어갔는데 사실은… 집사람이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도움은 좀 되기는 했지만, 목욕 요금이 다른 물가 상승률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것도 한몫하는 거 같구요.
23년 동안 운영하셨음에도 가장 큰 위기가 이 코로나인가요?
그때 당시에는 그래도 그게 마진 폭이 4000원정도 했었어요. 그 시절은 손님들이 설날 명절 때 옷장이 모자라서 저 위에 바구니를 10개 놨나 했습니다. 왜냐면 이 지역이 그 시절에는 보일러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거 이 코로나는 내가 느끼는 걸로는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기존 주민들이 잘 안 오시는 거군요.
인구가 늘은 적이 없어요. 동사무소 통계를 보시면 알겠지만은 유입하는 인구가 없고 자식들이 여기서 낳아서 성장해서 시집 장가를 가도 이쪽으로 들어와서 살지는 않습니다. 그냥 견디면서 사는 거죠.
견뎠다고 표현을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어른들은 그래도 집은 작아도 월세가 싸다 보니 오래 사셨어요. 근데 비행기 소음 때문에 이쪽 동네 사람들이 목소리가 상당히 커요. 좀 언성이… 톤이 조금 높습니다. 그거는 뭐… 이쪽에서 사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거죠. 사실 어쩔 수가 없어요. 큰 비행기들이 떴을 때 그 소음은 안 살아본 사람들이 오면은 못 견딜거예요. 그런데 오래 살면은 그것도 이야깃거리가 돼서 ‘아이 또 지나가네… ’이러고 말아요. 사람은 강한 것 같아요. 진짜 사람은 강한 것 같아…
청수탕을 23년 동안 운영하시다가 떠나시는데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이렇게 오래되고 낡았는데 그동안 이용해주신 주민들이 고맙죠.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대로 불편한 노인네들… 여기 거동이 불편한 노인네들이 많습니다. 그냥 잠옷 바람으로도 오실 정도로 가깝게 오시던 분들이 이제 없어집니다. 이 불편한 노인네들 때문에 미안하죠, 사실. 그거는 마음에 걸립니다, 아주. 마음에 걸리죠, 아주…
신월3동에 골목에 그러면 가장 필요한 게 있다면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방법은 도로를 넓히는 것이 우선적이지만, 그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일은 지금 하는 것처럼 주민들이 쉴 수 있거나 자존감을 좀 올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생긴다면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존감 높이는 거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이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낙후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그게 중요하죠, 사실은.
앞으로 신삼마을 골목이 좀 어떻게 됐으면 좋다는 거 있으실까요?
결론적으로는 재개발을 하는 것이고, 이게 그동안에 오래 고통받고 힘들었던 지역 주민들에게 주는 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23년 동안에 이 청수탕을 찾아주셨던 주민분들과 있었던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그거는 나는 남자라서… 남자들은 별로 그런 게 없어요. 근데 이제 여탕에서는 그런 뭐 자식 얘기나 가족 얘기들을 하면서 소곤소곤하곤 했는데, 사실 뭐 집사람도 직장 생활 계속했기 때문에 퇴근하면 여기도 문 닫습니다. 그래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허허
매일 새벽 4시 반에 사장님께서 문을 여시는 건가요?
예. 내가 맨날 열었습니다. 그러다 이제 지쳐서 5시 반, 5시로 더 늦어졌지만, 영업 끝날 때까지만 해도 5시 반에는 무조건 열었고, 처음에 한 10년 넘게는 4시 반에 꼭 문을 열었습니다.
네 오늘 정말 청수탕 관련해서 많이 얘기를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혹시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다했는데… 허허허. 하여튼 그 마지막으로 그동안 긴 세월 청수탕을 이용해주신 주민들께 너무나 깊은 감사 말씀 드린다고 그게 마지막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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