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그때만 해도 전기도 안 나오고, 호롱불로 다 살았어요. 길은 지금 이 길이 개천이었고요.
진우택 선생님
면담자 | 변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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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대상 | 진우택 |
대상약력 | 신월3동 51년 거주민 |
기관위치 | 가로공원로64길 25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진우택입니다. 152-37번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누님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삼마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나요?
71년도에 여기에 누나집이 있어서 들어오게 됐어요. 지금은 아내하고 둘이 살고 있습니다.
신삼마을에 처음 오셨을때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여기는 그때만 해도 전기도 안 나오고, 호롱불을 키고 살았어요. 길은 지금 이 길이 원래 개천이었고요. 그때는 슈퍼는 안하고 직장을 다녔었어요, 슈퍼를 하게된지는 한 7년 정도 된 것 같네요. 가게이름은 야뽐내에요. 야 뽐내 봐 이런 뜻인데 액세서리 같은 거랑 옷을 판매 했었어요.
사건이라든지 추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 전에 직장다닐 때는 집이 저쪽 건너 산 밑에 있었는데 여기서 쭉 버스를 타고 다녔어요. 뚝방길로 나가서 제일병원 있던 곳에서 버스를 탔는데, 그 전만 해도 거기서 사람이 막 뛰어 가면 차가 기다려줬어요. 버스가 기다려 줬다가 모두 태워 가곤 했었죠. 버스 타는 곳 양쪽으로는 논이 있었고, 시장 있는데는 산이였어요. 거기에 묘가 있었고요. 저쪽 건너 남서울 상고(현 서울 금융고)도 산이였고요. 이 슈퍼 자리는 개천길이라 집이 몇집밖에 없었어요.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예비군이 신월동에 한 개 소대밖에 안됐으니까 그렇게 사람이 집에 없었죠. 73년도에 철거민들이 오면서 여기가 이렇게 개발이 된거죠.
여기가 장화를 신고 와야 할 정도였다고 그러던데 비가 올 때는 어떠셨나요?
그 전에는 괜찮았지요, 산이 있을때는. 장화를 신어야한다고 할 적에는 정부에서 와가지고 산을 밀었잖아요. 산을 밀고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그때 당시는 물도 잘 안빠지고 이러니까 장화를 신어야한다고 말이 나온거죠.
따로 생각나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원래 그 전에는 비만 왔다 그러면 토끼도 잡아먹고 돼지도 잡아먹고, 닭도 잡아먹고 그랬지…그때는 많이 잡아먹었어요. 그거 말고는 가로공원길 이쪽이 다 논이었어요. 다 농사를 지었어요.
서울인데도 농사 짓는 분들이 많이 계셨나요?
옛날에는 여기가 김포땅이었어요. 등기부 등본 때보면 김포 땅으로 나왔죠. 그래서 비행기도 내리고 그랬어요. 공군들도 여기에서 다 훈련을 했어요. 공수부대 사람들도 늘 훈련을 하고 그랬어요.
그럼 그때부터 비행기가 많이 다니게 된건가요?
그러니까 70년대는 비행기가 별로 없었는데,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때 해가지고 활주로가 두개가 생긴거에요. 여기 산을 깎아서 활주로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비행기가 많이 다니게 된거죠.
현재 신삼마을 골목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전에 한번 물이 넘쳐가지고 시장이 다 잠겼잖아요. 그런게 문제였는데 작년인가에 하수구 공사를 다 다시해서 이젠 괜찮은것 같아요.
신삼마을에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바라는거는 애들을 낳으면 정부에서 보조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동네가 복지는 잘 돼요 지금. 복지가 좋긴 한데 잘 운영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조금만 많으면 조금 아프다 이러면 복지에 그걸 다 만들어 가지고 일을 안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일을 하면 돈을 안주니까..무조건 얻어가서 먹고 편하게 놀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꼭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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