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서서 장사를 했었죠.
지금 집이 들어서 있는 곳곳에 파라솔 같은 걸 펴놓고 장사를 많이 했었죠. 그때는 장사가 잘 돼서 노점상이 정말 많았어요. 저…
지금 집이 들어서 있는 곳곳에 파라솔 같은 걸 펴놓고 장사를 많이 했었죠. 그때는 장사가 잘 돼서 노점상이 정말 많았어요. 저…
기억이 나는 손님은 기분이 좋다고 물건보다 돈을 더 주고 가시는 손님들도 계셨고, 반대로 500원 깎아달라고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시고 다양한…
오죽하면 저희는 장화를 신고 돌아다녔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집마다 5만 5천원씩 돈을 걷었어요. 그 돈을 가지고 도로 포장 공사를…
다음에 준다고 회상을 하고 안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몇 년 뒤에 동네로 다시 돌아와서 갚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기억에…
그 당시에 신월3동이 인구가 엄청 많아서 방이 없어서 난리였죠. 집을 짓는다고 땅만 파도 계약이 됐었는데 지금은 빈 집이 너무 많아요.
예전에는 어느 집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 주위에 있는 분들이 오셔서 노트도 사다 주고 생일이면 장난감도 사다 주고 하는…
돌을 작업해서 판매했어요. 지금 작업한지가 한 20년 됐죠. 저기 정보통신 건물 정문에 했던 작업도 생각나고요. 네이버 건물에도 돌을 다 붙였었는데,…
옛날에는 화단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죠. 의자도 있었는데, 하도 거기에서 저녁 늦게까지 술들을 먹으니까 의자를 다 치워버렸어요. 큰 나무도 다…
그리고 10원짜리 국수가 생각이 나요. 점심 때가 되면 어느 차가 와서 국수를 가지고 왔어요. 차에서 국수를 끓여서 팔았는데, 백 원어치…
처음에, 아이들이 크기 전까지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산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좀 크고 나니까 아이들이 이 동네를 너무…
저녁 9시쯤이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불이 다 꺼지고 그랬어요. 그러고 나면 저녁에 집 앞에 나가서 돗자리를 피고 누워서 잤던 기억들도…
진짜 열심히 산다고 느꼈던거는 그렇게 힘듦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웃음소리가 넘쳤으니까… 지금 생각하니까 신월동 사람들이 참 힘들게 살기는 했지만 제일 행복하게…
복지관이 생기면서 길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다녀요. 처음에는 좀 외지고, 어두웠는데, 옆에 건물들이 있으니까 좀 환해져서 좋은 것 같아요.
저희는 신월3동에 파출소가 있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신월 1동 파출소에서 순찰을 돌고 가야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여기에 파출소가…
지금은 사람이 없어요. 학교 안 가는 날이면 애들 목소리로 시끌벅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예 골목에 사람을 못봐요… 코로나 때문에 더 그런…
뚝방길로 나가서 제일병원 있던 곳에서 버스를 탔는데, 그 전만 해도 거기서 사람이 막 뛰어 가면 차가 기다려줬어요. 버스가 기다려 줬다가…
코아루 아파트 있던 자리에 운전면허 학원도 있었고, 양서중학교 자리가 평지랑 밑에 공터처럼 된 공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서커스가 와서 구경했던…
우리 집 골목에 성폭력 범죄자가 돌아다닌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보니까 바로 뒷골목이더라고요, 심지어 앞집. 여자 혼자 사는데 창문으로 내다보고 들여다보고…
여기는 사업도 안되고… 비행기 소음문제도 있고… 그래서 재건축도 안되고 그래요. 재개발이 되서 지하철이나 이런 인프라가 생겨서 조금 더 살기 좋은…
저도 이번에 이사하면서 다른쪽으로 이사를 갈려고 집을 보러 다녔는데 그래도 여기에 정이 많아요. 살던 곳이 좋다라는 결론을 짓고 다시 신삼마을에…
그때의 골목은 사람들끼리 같이 어우러져서 없는 사람끼리 소비하고 그 안에서 벌어먹고 이렇게 돌아갔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더 다운이 되는 것…
아버님하고 어머님하고 제 남편하고 3교대로 해서 24시간 영업을 했어요. 거기가 한 다섯평 정도밖에 안 됐던것 같은데… 그게 초입이고 버스정류장 부근이어가지고…
골목이라고 하면 살레시오쪽 골목을 보면 돌담길이 있는 골목같은 경우엔는 봄에 되게 꽃이 예쁘게 펴가지고 그런 곳이 굉장히 예뻤다는 기억이 있어요.
행복마트가 큰애 단골 수퍼에요. 평일에는 어머님이 봐 주시니까 어머니하고도 맨날 들리는 것 같아요. 주인 아저씨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도…
그때 시골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지금에 비하면 인구가 10배 이상 진짜 잘하면 100배도 될 수 있어요. 여기 시장 골목을…
비행기 소음에 대해서 엄청 시끄럽다고 하시는데 저한테는 비행기가 지나가면 돌산 위나 저쪽 경계선 쪽에 올라가서 손을 뻗고 비행기가 내 손에…
이제 그런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 골목의 술집이라던지, 신월 3동 쪽에 있는 술집을 저녁에는 문을 닫고 아예 운영을 안했으면…
젊은 사람들이 여기와서 자리잡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동네도 애 울소리 하나 없고 강아지 소리밖에 안나니까 사는게 삭막해 지는것 같아요.
골목에 있는 동물들한테 많은 얘기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에 서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친구들과 시작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여기 마을에 만족을 하고 있어요. 할머니 덕분에 좀 더 편하게 생활하는 것도 있긴 한데 저는 다른 번화가보다 이렇게…
손님이 많아야 되는데 인구는 수요는 한정이 되어 있는데 공급이 너무 많아서 각자들 제 살을 깎아먹기로 장사를 하고 그러니까 또 망해나가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세세하게 관리해주니까 그런 것들 덕분에 공부나 이런 스트레스 받는 직업이 아니라 예체능 쪽으로 더 꿈을 많이 꾼 것…
집 옆에 교회가 있어요, 삼일교회라고.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토요일마다 거기 앞에서 떡볶이, 팝콘 이런걸 아이들하고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도하고 했던게 생각이…
옛날에 놀던때랑 지금이랑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예전엔 그네도 있었고 바닥도 모래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네도 없어졌고 바닥도 모래가 아니더라고요.
바닥길 공사를 자비로 해서 신축을 짓게 됐거든요. 골목길을 이렇게 돌아서면 예전에 집을 지을때 아버지의 모습이 순간순간 기억이 많이 나고 이…
그냥 바쁘신거죠. 각각 자기 삶을 사는 것, 자기의 살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옆에 상가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다거나 함께 한다거나…
제가 학창 시절 그 골목에 관한 추억이 많은데요, 그때는 굉장히 시장이 활성화 됐고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었고, 장사하시는 분들도 많았었는데 요즘에는…
다문화 엄마들이 한국으로 시집오면 외로울 때가 많아요. 처음에는 언어소통이 제일 힘들었죠. 지금은 20년 정도 살았으니까…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배웠어요.
우물을 보면 자기 모습이 비추잖아요, 저기 왜 내가 있어 그러면서 보다가 우물에 빠진 적이 있어요. 우물 근처에 술이랑 막걸리를 드시던…
골목에서 놀다 보면 시끄럽다고 얘기하시는 어른들이 많더라고요 의외로. 그런게 없어졌으면 좋겠고 애들이 마음껏 떠들고 놀아도 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골목에 집을 짓기 전에는 우물이 있었어요. 우물이 있을 때는 보건소 같은 곳에서 100원짜리 크기의 소독약을 주면 그걸 한달에 한번씩 우물에…
제가 이동네로 25살 쯔음에 이사를 왔어요. 그 당시에 동네에는 3개의 여인숙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어머니께서 운영 하셨었지요. 어머니께서 여인숙 운영을…
봉사활동은 그 때는 어려웠어요. 어려워서 살다보니까… 아마 봉사활동은 처음에 공공근로가 시작했을 때가 양천구가 되었을 때인 것 같은데. 그 때는 어디서…
저희가 맨처음에 183-9호에 이사를 왔는데, 86년도에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완전히 시골이예요. 그리고 183-3호에 와도 대문을 안 잠갔어요. 그때는 3층이나…
목욕을 끝내고 이제 현관을 나가는 손님들이 “아~ 시원하다”, “아~ 개운하다” 하면서 나갈 때가 참 기분이 좋아요. 그 기분은 겪어보지 못하면…